본문 바로가기

ESG

ESG 책방_자본주의 대전환(Reimagining Capitalism)

반응형

「강한자의 조건」

 

출처 : 네이버 영화

 

오래 된 영화이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2006년에 개봉된 류승완 감독의 영화 <짝패>입니다. 류승완 감독이 무술 감독으로 유명한 정두홍 감독과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학창 시절부터 주먹을 좀 썼던 태수(정두홍 분)와 석환(류승완 분), 그리고 태수의 친구 왕재(안길강 분)와 필호(이범수 분), 석환의 형인 동환(정석용 분)의 이야기입니다. 필호는 어릴 적부터 태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주먹으로 태수를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서울에서 경찰 생활을 하는 태수와는 대조적으로 필호는 고향에서 폭력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어 이익을 위해 온갖 만행을 다 저지릅니다. 친구 왕재까지 살해한 필호는 이를 응징하려는 태수, 그리고 석환과 마지막 결투를 벌입니다. 필호는 수십 명의 조직원들을 동원하여 결투를 벌였고, 결국 태수에게 일격을 가하게 됩니다. 죽어가는 태수를 보며 잔인한 미소와 함께 필호는 말합니다.

 

                                          “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놈이 강한 거드라...” 

 

 

「어느 안목 높은 CEO의 고백」

 

이달에 읽은 책은 레베카 헨더슨(Rebecca Henderson)이 쓴 <자본주의 대전환(Reimagining Capitalism)>입니다. 부제목으로 ‘하버드 ESG 경영수업’이라고 되어 있군요. 책에 있는 저자의 소개를 보면, 저자는 명망 높은 학자들이 특정 학과에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연구·강의할 수 있도록 하버드대학교가 임명하는 특별교수(university professor) 25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를 모색해온 세계적인 석학이기도 합니다.
저자의 주된 관심사인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라는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앞에서 필호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바로 ‘오래 가는 놈’이지요. 좀 거룩하게 말해서 ‘지속 가능’이지, 쉽게 말하면 ‘오래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저는 책 안에서 매우 인상적인 구절을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책에서는 ESG 경영의 수많은 사례들을 보여줍니다. 그 중의 하나가 CLP입니다. 1901년에 설립된 CLP는 발전소를 소유하면서 전력을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CLP의 발전소들은 대부분 석탄 화력발전소였습니다. 전기를 생산하는 비용이 가장 적게 들기 때문이지요. 태양열, 풍력, 원자력 등 대체 방안들보다 훨씬 싸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오랜 기간 동안 기업을 잘 운영해왔습니다.

그런데, 2004년 CLP는 2010년까지 전력의 5%를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2007년에는 2020년까지 20%가 무탄소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100년이 넘은 기업활동을 되짚어 보면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목표였습니다. 2013년 CLP의 CEO 앤드루 브랜들러(Andrew Brandler)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희는 탄소를 모든 기업의 장기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2050년에도 탄소 집약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면,심각한 문제에 봉착 할 것 입니다.
그때가 되면 그런 기업은 이미 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기업은 설립된지 100년도 넘었습니다.
저는 2050년에도 저희 기업이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하던 방식대로 사업을 운영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CLP CEO의 솔직한 한 마디 말입니다.
눈앞의 수익보다 수십 년 뒤를 바라보는 “저는 2050년에도 저희 기업이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는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얼마나 많이 변화하였고, 그 변화에 잘 적응하는 기업만이 ‘지속 가능’, 혹은 ‘오래 가는’ 기업이 될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안목 있는 CEO의 독백이기도 합니다.

레베카 헨더슨은 이를 ‘아키텍처 혁신(architectural innovation)’이라고 부릅니다. 아키텍처 혁신은 시스템의 구성 요소는 바꾸지 않은 채 구성 요소 사이의 관계, 다시 말해 시스템의 아키텍처를 바꾸는 혁신을 말합니다. 보통은 퍼즐의 한 작은 조각에 상대적으로 조그마한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퍼즐을 맞추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주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이행하게 하는 공유가치의 수용, 즉 ESG에 초점을 맞춘 경영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건 자본주의 상상력」

2018년 1월,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자산 관리기업인 블랙록(Black Rock)의 CEO 래리 핑크(Larry Fink)는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들어 있는 모든 기업의 CEO에게 편지를 보내 ‘사회적 목적에 봉사하라’고 요구한 바 있습니다. 전 세계의 많은 기업들이 ESG를 경영의 모토로 삼게 된 계기가 바로 래리 핑크의 서한입니다. 올해도 래리 핑크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이 서한에서 자본주의를 지속 가능하게, 즉 오래 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추구해야 하고, 그것이 곧 기업들이 ESG에 초점을 맞춘 경영을 해야 하는 이유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레베카 헨더슨은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바꿔보겠다는 대담한 상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단순한 변화나 수정이 아니라, ‘대담한 상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단순한 변화나 수정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새로운 자본주의가 되기 위해서는 보다 창의적인 관점의 상상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책의 원제목이 ‘Reimagining Capitalism’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번역본 제목인 <자본주의 대전환>은 좀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ESG 경영에 기반을 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란 결국 ‘함께 멀리’ 가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레베카 헨더슨이 책을 통해 ESG 경영의 5가지 키워드인 공유 가치, 목적 지향 기업, 재무 재설계, 협력, 시장과 정부의 균형 등은 ‘자본주의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신의 자본주의 상상력은 어떤 수준입니까?
그 수준이 높을수록, 그리고 그런 구성원들이 많아질수록 회사는 ‘오래 가는 강한 놈’이 될 것입니다.
영화에서처럼. 

반응형